4월 28일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은 1545년 4월 28일 태어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과 충의를 길이 전승하고 민족 자주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오늘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참전한 해전목록의 날짜별 순서와 전장, 병력, 아군과 적군의 피해 규모, 전적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임진왜란 해전 순서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13일(양력 5월 23일)부터 1598년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까지 약 7년간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을 말합니다. 당사국인 조선과 일본 외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 명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친 16세기 ~ 17세기 동아시아의 국제전이기도 했습니다.
선조가 즉위 25년에 발발한 전쟁이며, 임진왜란 전후로 조선의 전기와 후기가 나눠질 정도로 임진왜란은 아주 오랫동안 진행된 전쟁이었고, 오랜 시간 전쟁한 만큼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던 사건이었습니다.
1. 옥포 해전
- 조선군 및 조선 수군의 첫 승리
날짜 : 1592년 음력 5월 4일(양력 6월 13일)
전장 : 거제시 옥포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 정운, 이순신(입부), 어영담, 이영남
병력 : 전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
피해 : 1명 부상
일본군 장수 : 도도 다카토라, 호리노우치 우지요시
일본군 병력 : 군함 50척
일본군 피해 : 군함 26척 격침, 4,080명 전사
2. 합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전장 :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 정운, 이순신(입부), 어영담, 이영남
병력 : 전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
피해 : 없음
일본군 장수 : 불명
일본군 병력 : 군함 5척
일본군 피해 : 전멸 / 왜적이 배를 버리고 달아나 왜선을 모두 불태워 버림
3. 적진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5월 8일(양력 6월 17일)
전장 : 통영시 광도면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 정운, 이순신(입부), 어영담, 이영남
병력 : 전선 28척, 협선 17척, 포작선 46척
피해 : 없음
일본군 장수 : 불명
일본군 병력 : 군함 13척
일본군 피해 : 군함 11척 격침, 2척 도주, 2,840명 전사
4. 사천 해전
- 거북선 첫 출전
날짜 : 1592년 음력 5월 29일(양력 7월 9일)
전장 :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배흥립, 정운, 이순신(입부), 어영담, 송희립, 이영남, 김완
병력 : 전선 26척, 거북선 2척
피해 : 3명 부상(이순신, 나대용 포함)
일본군 장수 : 도도 다카토라, 구루시마 미치유키, 가메이 고레노리
일본군 피해 : 군함 13척 전멸, 2,600명 전사
5. 당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6월 2일(양력 7월 10일)
전장 : 통영시 산양읍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병력 :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경상우수영 전선 3척
피해 : 불명
일본군 장수 : 가메이 고레노리, 구루시마 미치유키 (전사)
일본군 피해 : 군함 21척 전멸
6. 당항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6월 2일(양력 7월 10일)
전장 : 경상도 고성 당항포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병력 :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경상우수영 전선 3척
일본군 장수 : 모리 무라하루 (전사)
일본군 피해 : 군함 26척 전멸
7. 율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6월 7일(양력 7월 15일)
전장 : 거제 장목면
장수 : 이순신, 원균, 권준
병력 : 전라좌수영 전선 23척, 전라우수영 전선 25척, 경상우수영 전선 3척
일본군 장수 : 불명
일본군 피해 : 대선 5척, 소선 2척 전멸
8. 한산도 대첩
한산도 대첩은 이순신장군의 3대 해전 중 하나로 세계 4대 해전과 임진왜란 3대 대첩에 속하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 해전입니다.
이순신장군의 3대 해전 순서
한산도 대첩 → 명량해전 → 노량해전
- 세계 4대 해전 : 살라미스해전(기원전 480년), 칼레 해전(1588년), 한산도 대첩(1592년), 트라팔가 해전(1805년)
- 임진왜란 3대 대첩 : 한산도 대첩(1592년 8월), 행주대첩(권율장군 1593년 2월), 진주대첩(김시민장군 1593년 10월)
날짜 : 1592년 음력 7월 8일(양력 8월 14일)
전장 : 통영시 한산도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김완, 이영남, 송희립, 황세득
병력 : 전선 56척
피해 : 3명 사망, 10명 부상
일본군 장수 : 와키자카 야스하루, 와키자카 사헤에 (전사), 와타나베 사치에몬 (전사), 마나베 사마노조 (자살)
일본군 병력 : 군함 73척
일본군 피해 : 47척 침몰, 12척 나포
9. 안골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7월 10일(양력 8월 16일)
전장 : 경상도 진해 안골포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권준, 배흥립, 정운, 어영담, 김완, 이영남, 송희립, 황세득
병력 : 전선 56척
일본군 장수 : 도도 다카토라, 구키 요시타카, 가토 요시아키
일본군 피해 : 군함 42척 전멸
10. 장림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8월 29일(양력 10월 4일)
전장 : 부산 사하구 장림동
장수 : 이순신, 이억기, 원균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전선 6척 전멸
11. 화준구미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사하구 몰운대 인근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군함 5척 전멸
12. 다대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사하구 다대동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군함 8척 전멸
13. 서평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군함 9척 전멸
14. 절영도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영도구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군함 2척 전멸
15. 초량목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동구 초량동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없음
일본군 피해 : 군함 4척 전멸
16. 부산포 해전
날짜 : 1592년 음력 9월 1일(양력 10월 5일)
전장 :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장수 : 이순신, 원균, 이억기, 정운(전사)
병력 : 전선 74척, 협선 92척
피해 : 사망 6명, 부상 25명
일본군 장수 : 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일본군 병력 : 군함 470척, 병력 7만 명
일본군 피해 : 100척 격침, 사망 2천 명
17. 웅포 해전
날짜 : 1593년 음력 2월 1일(양력 3월 3일)
전장 :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장수 : 이순신, 이억기, 원균
병력 : 전선 89척
피해 : 불명
일본군 장수 : 구와다 치카카즈 (전사), 고소카베 치카우치 (전사), 하타 노부토키
일본군 병력 : 군함 40척
일본군 피해 : 불명, 기록부실
18. 제2차 당항포 해전
날짜 : 1594년 음력 3월 4일(양력 4월 23일)
전장 : 경남 고성군 회화면 당항포리
장수 : 이순신, 이억기, 원균
병력 : 전선 124척
피해 : 없음
일본군 장수 : 나가오카 다다오키
피해 : 군함 31척 전멸
19. 장문포 해전
- 강화교섭 중 벌어진 전투로, 정유재란 이전의 마지막 전투입니다.
- 일본군의 1차 침입은 임진년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이라고 칭하며, 2차 침입은 정유년 1597년에 일어난 정유재란이라고 칭합니다.
- 크게 임진왜란은 일반적으로 정유재란을 포함하여 부릅니다.
날짜 : 1594년 음력 10월 4일(양력 11월 15일)
전장 : 경남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
장수 : 윤두수, 이순신, 곽재우, 김덕령
병력 : 전선 50척
피해 : 거의 없음
일본군 장수 : 시마즈 요시히로, 후쿠시마 마사노리
일본군 피해 : 소선 2척 격침. 인명피해는 거의 없음 무승부
- 일본군이 성을 지키는데만 집중하고 싸움에 나서지 않아 큰 성과 없이 끝난 전투입니다. 이전투는 이순신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삼도제찰사 윤두수가 주도한 전투로 곽재우와 김덕령은 무리한 작전이라고 생각한 전투입니다.
- 그럼에도 원균은 이순신이 적극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모함하게 됩니다.
이순신장군의 백의종군
이 무렵 원균에 의해 모함을 받던 이순신은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되고, 28일 동안 감옥 생활을 하며 가혹한 심문을 받게 됩니다. 이후 정탁이 임금에게 상소를 올려 목숨을 건진 이순신은 권율의 밑에서 백의 종군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백의종군은 권한이나 벼슬 없이 가장 낮은 자리에서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말하며, 이때 원균은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에 임명되게 됩니다.
1597년 음력 4월 1일 선조의 명으로 이순신 장군은 의금부에서 출옥하여 640km의 백의종군 길을 떠나게 됩니다.
- 충무공의 백의종군로는 한양(서울 종각역 1번 출구)을 출발하여 초계(합천)까지 행로와 동년 음력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되기 전까지 120일 동안 어머니의 임종마저 지키지 못하고 걸었던 길을 말합니다.
20. 칠천량 해전
-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 또는 칠천 해전은 1597년(선조 30년) 8월 27일 칠천도 부근에서 벌어진 해전으로 이 전투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원균 등이 도주 중 전사하며, 칠천량 해전의 패배로 조선수군은 대부분 궤멸됩니다. 이 전투는 한국사 5대 패전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 한국사 5대 패전 : 주필산 전투, 용인전투, 쌍령전투, 현리전투, 칠전량 해전
- 이순신 장군은 백의종군 중이라 출전하지 않았으며, 1597년 음력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됩니다.
날짜 : 1597년 음력 7월 16일(양력 8월 27일)
전장 : 거제도와 칠천도 사이
칠천량해협
장수 : 원균 (작전중 실종), 이억기(전사), 최호(전사), 배설(탈영), 김완 (포로)
병력 : 전선 134척, 거북선 3척
피해 : 전선 122척 침몰, 12척 도주, 사망자 수천
일본군 장수 : 구키 요시타카,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시마즈 다다유타, 가토 요시아키, 고니시 유키나가
일본군 병력 : 세키부네 60척
피해 : 불명
- 전투에 실제 참여한 일본 장교는 도도, 병력은 60척뿐임
21. 어란포 해전
날짜 : 1597년 음력 8월 27일(양력 10월 7일)
전장 : 전라도 해남 어란포
장수 : 이순신, 김억추
병력 : 전선 12척, 병력 120명
일본군 장수 : 불명
일본군 병력 : 전선 8척
일본군 피해 : 없음 / 일본군이 전장 이탈.
22. 벽파진 해전
날짜 : 1597년 음력 9월 7일(양력 10월 16일)
전장 : 전남 진도 벽파진
장수 : 이순신, 김억추
병력 : 전선 12척
일본군 장수 : 불명
일본군 병력 : 전선 13척
일본군 피해 : 없음 / 일본군이 전장 이탈.
23. 명량 해전
- 이순신 장군 3대 해전 중 하나로 조선 역사상 최고 최대의 조선 수군 승리 해전입니다.
칠천량의 패전의 손실이 커서 선조는 수군을 폐지하려고도 하였으나, 이순신은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장계를 올려 수군폐지불가론을 펼치게 됩니다.
-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전선 12척이 남아 있나이다. 죽을힘을 다하여 막아 싸운다면 능히 대적할 수 있사옵니다. 비록 전선의 수는 적지만 신이 죽지 않은 한 적은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철사를 엮은 철쇄 사용>
1. 수중 철쇄(철사를 엮은 철 줄)는 지금 진도대교가 있는 폭이 가장 좁은 자리에 걸었으며, 양쪽에 막개를 박아놓고 쇠줄은 물속에 잠기게 숨겨놓은 뒤 일본 수군을 기다립니다.
2. 1597년 10월 26일(음력 9월 16일) 오전 11시경, 어란진에서 출발한 333척의 일본 수군은 우수영으로 흐르는 밀물을 타고 빠른 속도로 울돌목에 들어섭니다.
3. 그들이 울돌목에 들어서자 수중 철쇄에 걸려 차곡차곡 쌓이며 서로 부딪혀 여지없어 부서집니다.
4. 오후 1시경 밀물이 끝나고 물길이 멈춥니다.
5. 일본 수군은 좁은 수로에 갇혀 오도가지 못한 채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의 전선들이 전진하며 각종 화포를 빗발처럼 퍼붓습니다.
6. 다시 썰물이 되는 순간, 정지했던 물길이 거꾸로 바뀌어 왜수군 쪽으로 흐르게 되고, 유리하던 조류마저 불리하게 변하자 조선 수군이 떠내려가는 일본 수군을 완전히 섬멸하게 됩니다.
이 쇠사슬은 당시 전라우수사 김억추가 자신의 행적을 직접 기록한 《현무공실기》에 “철쇄(鐵鎖) 즉 쇠사슬과 철구(鐵鉤)로 적선을 깨뜨렸다.”란 기록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실제로 20세기 초 일본의 연구 문헌에 의해서도 '명량해전에서 10여 척만 도망했는데 실제로 당시 조선해군의 함포에 의해서 침몰한 함선보다 해류와 철쇄(철사를 엮은 철 줄)에 의해 파괴된 함선이 더 많았음이 확실하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날짜 : 1597년 음력 9월 16일(양력 10월 26일)
전장 : 전라도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해협
장수 : 이순신, 배설 (탈영), 배흥립, 민정붕, 소계남, 송여종, 김응함, 조계종, 우수, 안위, 정응두, 김억추, 이응표, 류형
병력 : 전선 13척, 초탐선 32척, 어선 100척
피해 : 사상자 수 명, 정확한 규모 불명
일본군 장수 : 도도 다카토라(부상), 구루시마 미치후사 (전사), 가토 요시아키, 구키 요시타카, 하타 노부토키 (전사), 와키자카 야스하루, 간 미치나가, 간 마사카게 (전사), 모리 다카마사
일본군 병력 : 군함 133 ~ 330 여 척
일본군 피해 : 군함 31척 격침, 절반이상 궤멸, 거의 대파한 함선은 모두 320여 척
24. 절이도 해전
날짜 : 1598년 음력 7월 19일(양력 8월 20일)
전장 : 전라도 고흥 고라금해수욕장
장수 : 이순신
병력 : 전선 60척
피해 : 불명
일본군 장수 : 도도 다카토라, 가토 요시아키
일본군 병력 : 군함 100여 척
일본군 피해 : 50여 척 격침
- 난중일기에는 기록이 없고 선조실록에만 기록이 있음.
25. 왜교성 전투
날짜 : 1598년 음력 10월 2일 ~ 음력 10월 4일(양력 10월 31일 ~ 양력 11월 2일)
전장 : 전라도 순천 장도
장수 : 이순신, 진린, 황세득 (전사), 등자룡
병력 : 육군 36,000여 명, 수군 15,000여 명, 총병력 약 51,000명
피해 : 조선군 130여 명, 조명연합군 800여 명 사상
- 일본군에게 포위된 명나라군을 구하러 가던 사도첨사 황세득과 군관 이청일 등 사망
일본군 장수 : 고니시 유키나가, 오야노 다네모토 (전사)
일본군 병력 : 1만 4천 명, 전선 100여 척
일본군 피해 : 3천여 명 사상, 전선 30척 격침, 11척 나포
- 조명연합군 결성으로 육지와 수로를 동시에 병진하게 하여 일본군을 공격하였으나, 일본군의 수성이 성과를 거둬 육군의 공성은 실패하고 수군은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 이 전투로 인해 훗날 7년 전쟁을 끝내는 계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26. 노량 해전
- 이순신 장군의 3 대해전중 하나로 이 해전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하는 마지막 전투가 됩니다.
날짜 : 1598년 음력 11월 19일(양력 12월 16일)
전장 : 경상도 남해와 하동 사이 노량해협(오늘날 남해대교 자리)
장수 : 이순신 (사망), 진린, 등자룡 (사망), 이순신(입부), 김완, 이영남 (전사), 송희립, 배흥립, 우치적, 나대용
병력 : 조선 전선 83척, 명 호선 61척
피해 : 조선군 사상자 300여 명, 명군 사상자 500여 명
일본군 장수 : 시마즈 요시히로,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다치바나 무네시게, 데라자와 히로타카, 다치바나 나오쓰구 일본군 병력 : 군함 500여 척
일본군 피해 : 200여 척 침몰, 100여 척 나포, 사망자 1만 명 내외
오늘은 25번의 이순신 장군의 참전 목록과 참전하지 않아 대패를 맞게된 칠전량해전까지 알아보았습니다.
- 여러 가지 문헌 자료를 찾아보면 이외에도 더 많은 세부전투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23전 23승의 전승 신화에는 사실, 무승부도 포함되어 있으며, 난중일기와 선조실록 등 여러 자료를 조사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하면 45전 40승 5 무로 전적을 기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순신 장군은 타고난 지략가로 무모하지 않았으며, 원균과 같은 장군과는 다르게 아군의 피해가 없는 전투를 지향했다는 것입니다.
- 몇 전 몇 승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단 한 번의 패배도 없는 무패의 싸움만을 한 것입니다.